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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조세(Exocet) 대함미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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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39 공대함 엑조세 미사일. 이외에도 잠대함, 함대함, 지대함처럼 다양한 파생 형이 존재한다.

<출처 (cc) Rama at wikimedia.org>

 

 

1982년 4월 2일 새벽 3시 30분, 기습적으로 상륙한 600여명의 아르헨티나군이 영국령 포클랜드(Falkland, 말비나스 Malvinas) 제도를 장악하였고 다음날에는 다른 일군의 병력이 남극 초입의 남조지아 섬(South Georgia)도 점령하였다. 선공을 가한 아르헨티나는 영국이 본토에서 지구 반 바퀴나 떨어진 이곳의 군사적 탈환을 포기하고 정치적으로 해결을 볼 것이라 예상하였다. 하지만 영국은 아르헨티나군이 철군하지 않으면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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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랜드 전쟁 당시 출격하는 아르헨티나 해군 소속의 슈페르 에탕다르 공격기. 포클랜드 전쟁으로 말미암아

엑조세와 더불어 인기가 많이 올라간 대표적인 프랑스 제 무기다.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전쟁을

 

냉전이 한창이던 그 당시에 같은 진영이라 여기던 국가 간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지자 많은 이들이 당황하였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 영국의 손을 들어주게 되지만, 영국과 동맹관계이면서도 남미를 자신의 앞마당처럼 여기던 미국은 양측을 화해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하지만 4월 22일 영국 원정군이 남조지아 섬 탈환 작전에 나서면서 본격적으로 전쟁의 불길은 타올랐다.

 

 

세계인이 주목하는 가운데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포클랜드 제도와 인근 바다 일대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다. 구조적으로 아르헨티나 본토에 인접한 남대서양 일대에서 벌어진 제한적인 전쟁이었고, 또한 영국이 장거리를 원정해야 했던 관계로 처음에는 아르헨티나의 우세를 점치던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6월 14일 포클랜드 제도를 점령하고 있던 아르헨티나군의 항복을 받으면서 영국의 승리로 전쟁은 막을 내렸다.

 

 

이 전쟁에서 패한 아르헨티나는 군부독재 정권이 실각하는 등 엄청난 격변을 겪었던 반면 제2차 대전 이후 지속적인 국력 쇠퇴로 인해 이빨 빠진 사자로 취급 받던 영국은 강대국의 자존심을 되찾았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짭짤한 이익을 취한 나라는 정작 따로 있었다. 본의 아니게 자신들의 무기가 실전을 통해 대대적으로 선전 된 프랑스였다. 그 중에서도 엑조세(Exocet) 대함미사일은 세계 무기 시장에서 신드롬을 불러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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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5월 17일, 이라크 공군의 실수로 발사 된 AM39에 의해 피격 당한 미 해군 호위함 스타크. 비록 침몰하지 않았지만 53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을 만큼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이처럼 현대에 해전은 대함미사일에 의해 교전이 벌어지는 구조다.

 

 

개막된 새로운 시대

 

대함미사일은 해전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꾼 무기다. 이전에 적함을 격침시키려면 비슷한 플랫폼이나 아니면 그와 맞먹는 전력을 동원하여 했다. 1941년 순양전함 후드(Hood)는 정확히 강타당한 포탄 한 방에 생을 마감하였지만 이 포탄을 날린 적함도 후드 못지않았던 거함 비스마르크(Bismarck)였다. 사상 최대의 전함 야마토(大和)를 격침시킨 전력도 베닝턴(Bennington)을 비롯한 10여 척의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300여기의 함재기들이었다.

 

어뢰로 기습을 가하는 잠수함이 비대칭전력으로 각광을 받지만 공격 목표까지 은밀히 다가가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보이지도 않는 먼 거리에서, 그것도 극히 작은 플랫폼에서도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는 대함미사일은 가히 획기적인 공격 수단임에 틀림없다. 물론 탄두가 작아서 군함을 일격에 격파하기는 어렵지만 사실 이는 함포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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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코드 명으로 스틱스라고 불리는 P-15는 1967년 대함미사일의 위력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이를 흔히 스틱스 쇼크라고 하는데 15년후에 벌어진 엑조세 쇼크는 이를 능가하였다. <출처 (cc) 인도 해군>

 

 

1967년 10월 21일, 만재배수량 80톤에 불과한 이집트 해군의 코마(Komar) 급 고속정에서 발사한 4발의 스틱스(Styx) 대함미사일에 의해 2,500톤이 넘는 이스라엘 해군의 에일라트(Eilat) 구축함이 격침 당한 사건은 엄청난 쇼크를 불러왔다. 마치 앞으로의 해전은 당연히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는 지침과도 같았다. 항공모함으로 인해 절정기에서 내려오기 시작한 거함거포시대는 대함미사일의 등장으로 완전히 종언을 고해야 했다.

 

전쟁을 무조건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하며 벌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노리려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역사이래 그 어떤 종류의 무기보다 값비싼 주력함을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 대함미사일은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가장 효과적인 무기라 할 수 있다. 스틱스 쇼크가 있었던 바로 그 해 프랑스의 노르 아비아시옹(Nord Aviation, 1970년 아에로스파시알로 합병, 현 MBDA)은 새로운 대함미사일의 개발에 착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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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조세가 선체 측면을 정확히 가격 순간의 모습. 씨 스키밍을 이용하여 목표물 근처까지 고도를 낮추어 비행할 수 있다.

<출처: netmarine.net / Wikimedia>

 

 

작고 강하게

 

 

프랑스가 처음 구상한 대함미사일은 소형 고속정에서도 충분히 운용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를 목표로 하였다. 파괴력과 사거리는 탄두와 로켓의 크기에 비례하므로 이런 목표는 성능의 제한선이기도 했다. 파괴력은 거함거포 시대의 퇴조 시류를 반영하여 배수량 10,000톤 이하 함정에 타격을 가할 수 있을 정도, 사거리는 전함들의 주포 사거리와 비슷한 약 40km 내외 정도면 충분하다고 보았다.

 

사실 이 정도면 당시까지 등장한 여타 대함미사일들과 비교하여 파괴력이나 사거리가 특별히 좋은 편은 아니었다. 대신 노르 아비아시옹은 발사 후 상대 감시망에 걸리지 않도록 비행 시 목표물부근까지 수면 위 1~2m 정도의 저고도로 날아가는 씨 스키밍(Sea-skimming) 기술을 적용하여 안전성과 정확도를 높였다. 프랑스어로 날치(Flying fish)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엑조세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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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해군 소속의 슈페르 에탕다르 공격기. 포클랜드 전쟁 당시 엑조세 미사일을 발사하여

징발 수송선 애틀랜틱 컨베이어를 격침시킨 해당 기체다.

 

 

이런 콘셉트에 따라 개발된 엑조세는 1974년 개발 완료되어 실전 배치되기 시작하였는데, 최초 양산형인 MM38은 지대함, 함대함 모델로 165kg의 탄두를 장착하고 약 42km의 거리를 아음속으로 비행할 수 있었다. 프랑스는 이를 베이스로 공대함 버전인 AM39, 잠대공 버전인 SM39, 사거리와 성능을 대폭 향상한 MM40을 개발하여 프랑스군은 물론 30여 개국에도 수출함으로써 상업적으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엑조세는 서방측의 표준 대함미사일이라 할 수 있는 하푼(Harpoon)과 비교하여 2년 정도 개발이 늦었고 사거리나 파괴력도 뒤지지만 이처럼 히트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처음 언급한 것처럼 포클랜드 전쟁 때문이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프랑스 제 슈페르 에탕다르(Super Étendard) 공격기에서 운용하는 5기의 AM39를 보유하고 있었다. 비록 그 양은 적었지만 이들은 무기사에 스틱스 쇼크를 능가하는 엄청난 후 폭풍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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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조세의 일격으로 생을 마감한 영국 구축함 셰필드. 당시 취역한지 불과 7년 밖에 되지 않았던

최신예 방공구축함이었지만 일격을 피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남대서양에서 만들어진 신화

 

구식이기는 했지만 아르헨티나의 유일 순양함인 헤네랄 벨그라노(General Belgrano)를 격침시키며 서서히 영국이 전쟁의 주도권을 잡아가던 직후였던 1982년 5월 4일, 아르헨티나의 기막힌 역습이 벌어졌다. 초계기가 영국 함대의 위치를 발견한 직후 출격한 2기의 슈페르 에탕다르 편대는 최대 사정거리인 약 40km 전방에서 레이더에 잡힌 목표물을 향해 2발의 AM39 공대함 엑조세를 발사한 후 공역을 즉시 이탈하였다.

 

이때 한 발이 1975년 취역한 최신 방공구축함인 셰필드(Sheffield)의 중앙 측면을 정확히 강타하였다. 공교롭게도 탄두가 불발탄이었지만 연소가 완료되지 않은 로켓모터에서 내뿜은 화염으로 인하여 선내에 화재가 발생했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셰필드의 상부구조물은 특히 화재에 취약해서 피해는 겉잡을 수 없을 만큼 늘어갔다. 간신히 화재를 진화한 후 본국까지 예인 하려 했지만 결국 6일 만에 침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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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 발사하는 지대함 버전 엑조세.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 구축함 글래모건이 해안가에서 날아 온 MM38에 타격을 입기도 하였다.

 

 

20여 일 후인 5월 25일에 해리어(Harrier) 전투기와 보급품을 운송하던 화물선 애틀랜틱 컨베이어(Atlantic Conveyor)가 역시 AM39의 공격으로 침몰 당하였고, 6월 12일에는 구축함 글래모건(Glamorgan)이 육지에서 발사한 MM38 지대함 엑조세에 손상을 입고 14명이 전사하기도 하였다. 만일 아르헨티나가 더 많은 엑조세를 보유하였다면 전쟁의 양상이 영국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돌아갔을 것이라는 가설이 상당히 설득력을 얻었을 정도였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엑조세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이제 바다에서의 싸움은 대함미사일에 의해 결정됨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그러면서 엑조세와 슈페르 에탕다르는 일약 무기 시장의 신데렐라가 되었다. 사실 실제 성능에 비해 위력이 너무 과대평가되었고 대함미사일의 공격에 대처하는 영국의 준비가 부족하였기에 그런 전과가 나왔다는 주장도 있지만, 어쨌든 당시 세계에 불어 닥친 프랑스 무기에 대한 관심은 그야말로 대단하였다.

 

특히 누구보다 포클랜드 전쟁을 가까이 지켜보았던 아르헨티나 주변의 남미 국가들이 앞 다투어 엑조세 구매에 나서 프랑스를 즐겁게 만들었다. 바다가 없는 파라과이와 볼리비아를 제외한 어지간한 나라들은 모두 구매하였을 정도였다. 덕분에 엑조세는 하푼과 더불어 서방 대함미사일의 양대 축으로 당당히 자리를 공고히 하였고 2010년대 들어 사거리가 180km가 넘는 MM40 블록3까지 등장하며 변신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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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 한국 해군의 초계함인 군산함에서 발사하는 MM38 <출처: 대한민국 해군>

 

 

우리와의 인연

 

엑조세는 우리와도 상당히 인연이 깊은 무기다. 1970년대 들어 주한 미 7사단의 철수와 동남아 공산화로 인하여 위기를 느낀 당시 정부는 북한 해군을 제압할 신형 대함미사일의 도입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미국이 이제 막 양산이 개시된 하푼이 미 해군 소요 물량 대기도 벅차다는 핑계로 판매를 거부하자 MM38 도입으로 정책을 바꾸었다. 하지만 프랑스도 이제 막 양산에 들어간 최신 무기의 판매를 망설였다.

 

이때 우리 정부는 프랑스의 주도로 결성된 에어버스(Airbus) 사가 최초로 개발한 A300여객기 4대를 함께 구매하겠다는 당근을 제시하였다. 제1차 오일 쇼크 후 A300의 판매에 어려움을 겪던 프랑스에게 이는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이로써 한국은 개발에 관여한 유럽 국가 이외에 처음으로 A300을 구매한 국가가 되었고 함께 도입이 이루어진 MM38도 프랑스와 비슷한 1975년도 실전에 배치할 수 있었다.

 

사실 미국의 하푼 판매 거부는 당시 자신들도 가지지 못한 무기의 한국 보유를 저지하기 위한 일본의 방해 로비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도입선을 과감히 다른 곳으로 돌린 정부의 적극적인 행동에 놀란 미국은 엑조세를 도입한 직후에 곧바로 하푼의 판매를 승인하였고 덕분에 우리나라는 엑조세는 물론 일본보다 먼저 하푼을 보유하게 되었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칼자루를 잡고 무기 시장을 흔들었던 보기 드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제원

 

길이 4.7m/ 지름 34.8cm/ 무게 670kg/ 탄두중량 165kg/ 사거리 70~180km/ 속도 마하0.92

 

글  남도현 | 군사 저술가[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