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21.03.19 00:02 수정 2021.03.19 01:20
https://news.joins.com/article/24015407
18일 한·미 외교·국방(2+2) 장관 공동성명에 ‘중국’과 ‘북한 비핵화’가 빠졌다. 하지만 이어진 공개 발언에서 미국은 북한 체제를 “억압적인(repressive) 정부”, 중국의 행위를 “공격적이고 전체주의적(aggressive and authoritarian) 도전”으로 규정했다. 한·미 외교·안보라인 핵심 장관 4명이 함께하는 ‘2+2 회의’는 2016년 10월 이후 5년 만이다.
5년 만에 한·미 2+2 장관 회의
미국 “쿼드 협력” 한국 “논의 안했다”
공동성명엔 ‘북 비핵화·중국’ 없어
양국 이견 커 민감한 현안 다 뺀듯
기자회견 중에 쓴 용어도 달라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라 표현
미 핵우산 제거, 미군 철수 겨냥
블링컨, 북한 의도 알고 말한 듯
정의용 외교부 장관, 서욱 국방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2+2 회의 뒤 결과물로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70년 전 전장에서 피로 맺어진 한·미 동맹이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 안보, 번영의 핵심 축”이라고 재확인했다. 또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른 한국 방어와 한·미 연합방위태세 강화에 대한 상호 공약도 재확인했다.
핵심 축이나 굳건한 방위 공약은 한·미 협의 때마다 들어가는 기본 내용이어서 이번 공동성명에서는 빠진 내용이 눈길을 끈다. 우선 중국이 빠졌다. 이틀 전 미·일 공동성명에서는 양측이 중국의 ‘강압적 행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중국 해양경찰법부터 대만해협에서의 군사활동,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 홍콩과 신장 인권 문제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중국을 저격했다.
하지만 한·미 공동성명에서는 “역내 안보 환경에 대한 도전이 커지는 가운데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훼손하고 저해하는 모든 행동에 반대하는 데 있어 두 나라가 함께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것은 한·미 동맹이 공유하는 가치”라고 한 게 전부다. 구체적 현안은 모두 건너뛴 원론적 입장 표명인 데다 국제질서를 훼손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도 특정하지 않았다.
비핵화도 빠졌다. 공동성명은 “양국 장관들은 북한 핵·탄도미사일 문제가 동맹의 우선 관심사임을 강조하고, 이 문제에 대처하고 해결한다는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돼 있다. 한·미 안보 협의 결과에서 비핵화라는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은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북한 핵·미사일도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지 않고 ‘우선 관심사’로만 표현했다. 이는 미·일 공동성명이 북한의 무기를 “심각한 위협”이라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전념할 것을 재확인했다”고 한 것과 비교된다.
공동성명이라도 의견이 다른 사안은 주어를 한쪽으로만 해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번 공동성명은 한쪽이라도 원치 않는 내용은 모두 빼는 식으로 작성한 것처럼 보인다. 비핵화만 빠진 게 아니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빠졌고, 중국만 빠진 게 아니라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협의체도 빠졌다.
2+2 회의 뒤 이어진 기자회견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이견 표출을 개의치 않는 정도가 아니라 기자회견을 빌려 할 말은 다 하겠다는 식이었다. 블링컨 장관은 현재 진행 중인 대북 정책 리뷰에 대해 “미래의 외교에 대한 잠재적 가능성을 열어두는 동시에 압박을 재개하는 방안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블링컨 “북 비핵화” 세 차례…정의용 “한반도 비핵화라 해야”
또 “목표는 명확하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이 미국과 동맹에 가하는 위협을 축소하고 모든 한국인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라며 “여기서 한국인은 억압적 정부에 의해 자행되는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인권 유린에 의해 계속해서 고통받는 북한 주민을 포함한다”고 했다.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모두발언에서 한 말이다. 이어서 타깃을 중국으로 옮겼다. 그는 “우리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 안보, 번영에 도전을 가하는 중국의 공격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행위에 대해서도 논의했다”며 “중국의 행위는 우리 동맹 간 공동의 접근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이는 이날 협의에서 한국도 중국 압박에 동참해야 한다고 요청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정의용 장관의 발언은 결이 달랐다. 그는 “한·미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을 위해 계속 협력할 것”이라며 “지난 3년간 한·미는 북한에 계속 관여하면 비핵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압박하며 외교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블링컨 장관의 발언과는 방점이 달랐다. 정 장관은 중국으로 인한 도전이나 북한 인권 문제는 언급하지도 않았다.
용어를 두고서도 두 장관은 달랐다. 블링컨 장관은 기자회견 중 세 차례나 “북한 비핵화”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정 장관은 “한국은 이미 핵무기를 포기했고, 한반도 비핵화라고 하면 북한도 우리와 같이 비핵화하자는 뜻”이라며 “한반도의 비핵화가 더 올바른 표현”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 표현을 미국의 핵우산 제거와 주한미군 철수로 연결시킨다. 블링컨 장관이 북한 비핵화라고 말한 것도 북한 의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 장관은 “쿼드 관련 논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번 협의에서 직접적인 논의는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 국익에 맞는다면 어떤 협의체도 협력이 가능하다”는 기존 입장만 반복했다. 같은 질문에 블링컨 장관은 “알다시피 쿼드는 모든 이슈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생각이 비슷한 국가 간의 비공식적 모임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며 “우리는 한국과도 굉장히 긴밀히 협력하고 있고, 이는 한·미·일 협력 같은 역내 그룹을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서 한국의 쿼드 참여에 대한 직접 협의는 없었지만, 미국은 한국이 쿼드에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미국이 대중 견제 성격의 쿼드에 대해 비공식적이고 보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한국이 참여할 수 있는 명분을 주려는 측면도 있는데, 한국은 신중한 입장을 보인 셈”이라며 “한국이 일본과 달리 대중 압박에 쉽사리 참여하지 않는 것이 전략적 이익이 될지 정부가 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블링컨·오스틴 장관을 50분간 접견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 동맹은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이자 핵심이며, 세계사에 유례없는 성공적인 동맹”이라며 포괄적 전략 동맹, 책임 동맹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또 “한·일 관계 복원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지혜·윤성민·정진우·박현주 기자 wisepe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북·중 놓고, 한·미 확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