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21.03.16 16:16 수정 2021.03.1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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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가 미 국무‧국방 장관의 첫 방한을 하루 앞두고 나온 것은 명확한 대미 메시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한‧미 연합훈련을 문제삼으면서도 화살은 주로 한국에 돌렸고, 미국을 자극하는 표현은 거의 쓰지 않았다.
김 부부장의 16일 담화에서 미국을 향한 비판은 말미의 두 문장이었다. 김 부부장은 "미국의 새 행정부에도 한마디 충고한다"며 "앞으로 4년간 발편잠을 자고싶은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것이 좋을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을 향해서 "태생적인 바보", "판별능력마저 완전히 상실한 떼떼", "앞길이 무척 고통스럽고 편안치 못하게 될것" 등 표현을 동원해 비난한 것에 비하면 나름대로는 절제된 반응이라는 평가다. 정부 당국자는 "그간 낸 담화를 보면 김 부부장이 이번에도 훨씬 강경한 표현을 동원했을 수도 있는데 이정도면 표현 수위를 꽤 조절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대남 비방 비해 대미 메시지는 수위 조절"
2+2 회의‧대북정책 검토에 영향 주려는 목적
실제 행동 감행할 경우 미국, 대북 경고 나설 듯
특히 김 부부장은 미국 측이 최근 북한에 대화를 제의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데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앞서 미 백악관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지난달 중순부터 뉴욕의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등 경로로 북한에 대화를 시도했지만 답이 없었다"고 밝혔다. 언론 보도에 대한 대응의 성격으로 공개한 것이지만 대화 제의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까지 이례적으로 함께 공개한 것을 두고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이미 최선을 다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제스처라는 분석이 나왔다.
예민한 사안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공개한 데 대해 반발할 수도 있는데, 이날 김 부부장의 담화에 이에 대한 반응은 없었다. 이는 지난해 한국 정부의 대화 제의를 먼저 공개하며 비꼬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과 크게 비교된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해 6월 한국 정부가 특사 파견을 요청했으나 김 부부장이 이를 "철저히 불허했다"며 "서푼짜리 광대극을 연출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결국 담화를 낸 타이밍이나 표현의 수위 등을 봤을 때 이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이뤄질 북핵 협의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리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한‧미는 18일 외교·국방장관 간 2+2 회의 뒤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공동 기자회견도 열 예정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날 담화는 한‧미간 2+2 회담 등에서 자신들을 심히 자극하는 발언이나 회담 내용이 나오면 곤란하다고 경고하는 성격도 내포한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이번 한·미 간 회담에서 한국이 자신들에 유리한 방향으로 미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라고 압박하는 의미도 있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한은 한국의 역할에 대해 사실상 희망을 잃은 상태지만, 적어도 2+2 회의에서 미국 측을 설득하는 데 있어 보다 부담감을 갖고 협의에 임하도록 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구체적으로는 미국 측의 원칙적인 대북 정책 대신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남북 간 대화와 협력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설득해나가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블링컨 장관과 오스틴 장관이 한국 방문에 앞서 일본에 머무르며 미‧일 간 2+2 회의를 하기 직전에 김 부부장의 담화가 발표된 것도 주목할 만 하다. 바이든 행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대북정책 검토 과정에서 미‧일 간 정보 및 의견 교환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일본의 강경한 대북 정책론이 미국의 정책에 그대로 반영될 것을 우려해 미리 견제구를 던진 것이다.
현재로선 북한이 대남‧대미 비난 메시지를 내는 수준에 그친만큼, 미국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현재 진행 중인 대북정책 검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김 부부장이 담화를 발표하기 전인 15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북한과 적극적인 대화가 1년 이상 없었지만, 외교는 여전히 최우선 순위로 남아있다"며 외교적 해법을 강조했다. 백악관은 김 부부장의 담화 발표 후에도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외교부는 "정부는 남북대화와 북‧미대화가 조기에 재개돼야 한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며 "이번 미 국무·국방장관 방한 계기에 한·미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가질 예정"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다만 북한이 말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도발을 감행할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김 부부장은 지난해 6월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를 예고하고 사흘 뒤 실제 행동에 옮겼다. 따라서 북한이 조만간 군사적 행동에 나서거나 남북군사합의서 파기 등 도 넘은 행위를 할 경우, 동맹에 대한 굳건한 방위 공약을 수차례 강조했던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단호한 견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블링컨 방한 전날…北 김여정의 첫 대미 입장은 '절제된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