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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767(Boeing 767)은 보잉이 개발한 중형 광동체 쌍발 제트 여객기이다. 보잉 최초의 국제적 개발 프로젝트로서, 개발 과정에는 미쓰비시 중공업 등 일본의 기업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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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이 에어버스의 광동체 쌍발 항공기인 A300의 성공에 자극받아 이와 경쟁하기 위하여 개발한 기종으로, 세계에서 가장 폭이 좁은 광동체형 제트 여객기이다.

 

보잉 747과 동일한 모델의 터보팬 엔진인 P&W의 JT9D, PW4000(92인치), 롤스로이스의 RB211, GE의 CF6-80을 2개 장착하도록 설계되어, 정비에 있어서의 편리함을 도모함은 물론 유지비 또한 낮추었다.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 사건에서, 납치범들에게 납치되어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충돌한 아메리칸 항공과 유나이티드 항공 소속의 여객기들이 200형이었다.

 

보잉 767의 여객형은 사실상의 후속인 B787로 대체됐으며, 현재는 화물기 및 군용기만 생산 중이다. 또한 A330이 직접적 경쟁자다.

 

보잉 767은 최대이륙중량 200톤의 비행기로서, 미국의 전략폭격기 B-52(220톤, 1952년)과 비슷한 크기이다. A300(170톤, 1972년)의 성공은 보잉으로 하여금 보잉 767(200톤, 1981년)의 개발을 착수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또 다시 에어버스가 A330(230톤, 1992년)을 제작하게 하였으며, 보잉은 다시 767보다 연료소모율을 20% 줄인 B787(254톤, 2009년)을 개발하는 등 보잉-에어버스의 양자대결 구도를 낳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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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767-200

1978년에 생산이 되면서 1981년부터 1994년까지 생산된 보잉 767 항공기의 최초 모델로, 1982년에 유나이티드 항공이 운항을 시작했다.

 

당초 안전상의 이유로 비행 시험용의 1~4호기의 조종 승무원을 3인만 했다. 1981년 9월에 미국 정부의 위원회가 신형기에 대해서는 2명 승무에서도 안전 운항이 가능한다는 결론을 발표하면서 또 그것과 동시에 라이벌의 단거리용 여객기도 동클래스의 신형기 에어버스 A310으로 운항을 본격화했기 때문에 보잉은 급히 767을 2명 승무에 맞게 설계를 변경했다. 6호기에서 2명 운항이 가능한 조종석으로 제조해 1982년 5월 27일에 첫 비행을 시작했다. 이후 현재는 모두 퇴역 되면서 박물관에 보존되기도 한다. 이 기종은 9.11 테러에 쓰이기도 했는데 당시 테러에 쓰인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아메리칸 항공 11편이 이 기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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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767-200ER

767-200에 연료 용량 증가 등의 개량을 더해 항속 거리를 늘린 타입으로 1984년에 엘알 이스라엘 항공이 첫 비행을 실시했다. 첫 수주는 1982년 12월 16일의 에티오피아 항공이 최초로 출고 했으며 항속거리는 767-200보다 2배 길다. 군용의 파생형도 767-200ER를 베이스로 만들어지고 있다.

 

9.11 테러에 사용된 아메리칸 항공 11편이 이 기종의 일부였다.(B767-223ER) 중국국제항공 129편 추락사고의 사고 기체 역시 767-200E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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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767-300

767-200의 동체를 연장해 좌석수와 화물 적재량의 증가를 실시한 기체이다. 일본항공을 시작으로 초기 도입으로부터 20년을 경과하고 있는 기체에 속하기 때문에, 2009년부터 퇴역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항공사에서 후계가 되는 보잉 787 드림라이너의 제조가 지연되며 퇴역이 늦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국적사들 중에서는 아시아나항공만 Non-ER 300형을 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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