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산업전략포럼] 장상호기자 = 내돈내산’ 아니라고?… K9 자주포 이집트 수출 계약의 오해와 진실
계약금 80% 韓은행 대출 논란
방사청 “사상 최대 2조원 규모 수출
文대통령 협상 타결 계기 마련” 홍보
계약조건 등 세부내용 전혀 언급 없어
이집트 국방부와 보도시점 조율 안 돼
정부·업체 자료 배포 시점도 제각각
대형무기 수출 계약 관행과 거리 멀어
수출입은행과 대출 계약 아직 미체결
이집트정부의 ‘가격 후려치기’ 논란도
정부 방산수출 이중적 행태 불신 키워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는 K-9 자주포 . 한화디펜스 제공
지난 1일 날아든 K9 자주포 이집트 수출계약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이집트의 ‘내돈내산’이 아니고 수출 계약금액의 80%인 1조6000억원가량을 한국수출입은행이 빌려 주기로 한 점이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K9 수출을 문재인 대통령의 이집트 순방 성과로 치켜세웠다. 하지만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 동행했던 김정숙 여사의 이집트 피라미드 방문과, 수행원 가운데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것을 숨기면서 오히려 부정적 인식만 키웠다. 정권이 잘못은 감추고 생색만 내려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K9 자주포의 이집트 수출 계약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짚어본다.
◆대통령 순방 결과로 포장하려다 잘못 끼운 첫 단추
방위사업청은 설날인 지난 1일 “이집트에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며 ‘명품 무기체계 K9 자주포, 이집트 수출 달성’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쾌거’라거나 ‘계약금액 2조원 이상, K9 자주포 최대 규모 수출’이란 표현이 동원됐다. “10년 동안의 (지지부진했던) 협상이 급진전을 이룬 데 업체 노력도 있었으나 (청와대) 안보실을 컨트롤타워로 한 정부의 적극적 지원 결과”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지난 1월 중순) 이집트를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간 집중적인 협의를 통해 막바지 협상 타결의 계기가 마련됐다”는 문구도 삽입됐다. 4페이지 분량 자료에 문 대통령은 여섯 번이나 언급됐다. 이집트 순방에 나섰던 ‘대통령 띄우기’로 여길 만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중요한 수출입은행의 K9 자주포 구매대금 대출이나 계약조건 등 세부 내용은 한 줄도 언급되지 않았다. K9 자주포 이집트 수출계약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진 배경이다.
정부 차원의 협력과 지원 사실은 방사청이, 계약의 절차적 정당성은 계약 주체인 한화디펜스가 맡아 같은 날 자료를 내고, 함께 설명을 했다면 K9 수출과 관련한 정치적 해석 등 불필요한 오해는 줄었을 것이다. 한화디펜스는 방사청이 보도자료를 낸 지 이틀 뒤인 3일에 자료를 냈다. 알고 보니 ‘공시 의무’ 제한 규정에 따른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 정부 소식통은 “설날 뭔가 돋보이는 소식을 전하고 싶어 했던 정부가 조바심에 업체에 이틀 앞서 자료를 배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그 내용이 너무 ‘용비어천가’에 가깝다보니 언론에서 관련한 계약 내용에 관심을 가졌을 테고, K9 수출에 대한 비판적 보도들이 나온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에 방사청은 “이집트 정부가 1일 홈페이지에 K9 자주포 수출 사실을 공개해 우리도 할 수 없이 같은 날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집트와 보도 시점에 대한 사전조율이 안 됐다는 것인데 이는 대형 무기 수출 계약의 관행과는 거리가 있다.
한화디펜스가 이집트에 공들인 것은 2005년 무렵이다. 그사이 ‘재스민혁명’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7년부터 K9 자주포 수출 논의가 가시화됐지만 계약 성사로 이어지지 못하다가 문 대통령 중동 순방과 겹치면서 극적으로 성사됐다. 업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 때 K9 수출 문제를 꺼내 계약 성사의 ‘촉진제’ 역할을 한 것은 분명 평가받아 마땅하다”면서도 “그런 노력을 밑에서 제대로 떠받치지 못해 스텝이 꼬인 게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K9 수출은 정상 계약인가
가장 궁금한 부분이다. 한화디펜스는 이집트 정부와 계약했지만 K9 수출대금의 상당액은 이집트 정부가 아닌 우리 수출입은행으로부터 받는다. 이집트는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다. ‘특혜 아니냐’는 시각이 있을 법하다. 방사청은 이런 방산수출 파이낸싱을 “통상적인 수출 기법”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K9 이집트 수출과 관련해 우리 수출입은행과 이집트 정부 간 대출계약이 아직 체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출을 낀 수출계약은 실물 협상(각종 옵션과 가격)과 금융 협상(대출 기간 및 금리, 상환조건 등)을 동시에 진행해도 되고, 순차적으로 해도 무방하다. 그렇지만 금융 협상은 시작도 못했는데 실물 협상 계약을 했다고 덜컥 수출계약 체결을 발표한 것은 정부가 다소 성급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방사청 박근영 대변인은 “대출 상환 등 주요 조건에 대한 대출 협의가 사실상 마무리되고, 이자율과 일부 세부사항 사인만 남은 단계라서 수출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고는 “2011년 T-50 고등훈련기 수출 때도,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때도 수출계약 후 몇 개월 뒤에 금융 계약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한화디펜스도 “아무 문제가 없는 수출계약이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반면 수출입은행은 좀 다른 입장이다. 이번 K9 수출계약을 “MOU(양해각서)와 계약 사이의 어떤 수준, 법적 구속력이 좀 낮은 정도의 ‘딜’로 보인다”고 규정지었다. “아직 이집트 정부로부터 대출과 관련한 어떠한 문서도 전달받지 못했다. 수출입은행으로선 이집트의 대출 요청서(Loan Request)를 수령한 뒤에야 본격적인 대출 협상에 나설 수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단할 수 없다.” 수출입은행 대출 실무자의 얘기다.
‘헐값’ 수출계약 여부도 논란거리다. 이집트의 군사분야 파워블로거인 마흐무드 가말씨는 K9 자주포 이집트 수출이 알려진 1일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 정부는 성공적으로 거래를 마무리하기 위해 추가 협상 없이 이집트 정부의 상당한 가격 인하 제안을 받아들였다”(The Koreans accepted the Egyptian proposal of a significant price cut without further negotiations to conclude the deal successfully)라는 글을 올렸다. 문 대통령의 이집트 순방에도 불구하고 물 건너간 것처럼 여겨졌던 K9 수출이 급반전을 이룬 것은 일종의 ‘가격 후려치기’의 결과라는 주장이다. 한화디펜스 관계자는 “주변에서 K9 자주포 호주 수출과 비교하는데 호주는 K9 생산 공장을 지어줘야 한다. 개발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이에 반해 이집트는 기존 공장을 활용한다. 현지 생산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뤄져 단순 비교하면 안 된다”며 선을 그었다.
◆정부의 이중적 행태도 불신 키워
그동안 정부는 방산비리 척결을 적폐청산 과제의 하나로 여겼다. 국산 무기체계의 수출을 통해 방위산업을 육성·발전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기보다 오히려 이를 감독하고 감시하는 편에 섰다. 감사원에서 잔뼈가 굵은 왕정홍 전 청장을 발탁해 역대 방사청장 중 두 번째로 오랜 기간(2년 4개월) 자리를 지키게 했던 것이 단적인 예다. 이런 기조를 유지해온 정부가 방향을 급선회해 방산수출 홍보에 적극 나선 것은 “이중적”이란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이집트 K9 수출과 관련해서도 “범정부 차원의 긴밀하고도 다각적인 협업에다 강은호 방사청장의 다섯 차례 이집트 방문이 주효했다”고 자화자찬을 하니 방산업체들의 장단 맞추기가 어디 쉽겠나.
지난해 10월 20일 ‘2021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때다. 문 대통령은 국산 전투기 FA-50을 타고 행사장인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나타났다. 전투기에 탑승해 영공을 비행한 건 역대 대통령 중 처음이었다. 방위산업 육성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었지만 구설도 있었다. 청와대는 당초 19일 오전 개막식에 맞췄던 대통령 참석 일정을 기상 악화를 이유로 하루 뒤로 변경했다. 덕택에 대통령 방문을 전후로 몇 시간 동안 방산전시회 관련 일정이 올스톱됐다. 몇 달 전부터 계획됐던 우리 기업체와 해외 바이어 간 협상은 취소되거나 뒤로 밀렸다. 업체들 속이 부글부글 끓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에도 다소 신중치 못한 홍보가 역풍을 부른 게 아닌가 싶다. 임기말 대통령이 한 일도 없이 방산수출에 자꾸 숟가락 얹는다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세계일보 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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