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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국민가곡 '비목'의 배경

백암산 GP장 출신 한명희 작사가 경험에서 비롯 

6·25전쟁 마지막 전투인 금성전투의 핵심 전장

’상승칠성‘ 육군7보병사단 불사조여단

 

 

[방위산업전략포럼]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 가곡 ’비목‘/작사 한명희

 

  강원 화천군 화천읍과 철원군 원동면(과거 북한 김화군) 사이에 위치한 해발고도 1178m의 백암산(白巖山)은 6·25전쟁의 마지막 대규모 전투인 금성전투의 핵심 전장이었습니다. 수도권의 주요 전력 공급원인 화천수력발전소를 차지하기 위해 남북은 전쟁 내 치열한 공방을 펼쳤고 정전협정 체결을 앞둔 1953년 7월 고지전이 극에 달했습니다. 화천수력발전소와 직선거리 12km인데다 중동부 전선 최고높이 고지인 백암산은 우리에게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중부내륙으로 통하는 관문인 백암산을 빼앗기면 화천, 춘천, 원주, 제천까지 연이어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기에 국군은 이곳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습니다. 

 

  백암산 일대 고지들을 사수하기 위한 크고 작은 전투가 이어졌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고지 곳곳에 쓰러져 갔습니다.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1964년 어느 날, 백암산에서 수색중대 소대장으로 복무하던 한명희 선생은 순찰 중 이름 모를 병사의 철모와 돌무덤을 발견했습니다.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채 외롭게 누워있을 선배의 모습은 그에게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1964년 백암산에서 GP장으로 근무할 당시 순찰 중 녹슨 철모와 돌무덤 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이름 모를 무덤이 전쟁 당시 내 또래의 젊은이였을 것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국방일보 인터뷰 중에서)

 

  작사가 한명희가 이날의 감정을 담아 당시 쓴 노랫말에 곡을 붙인 것이 현재 국민가곡으로 널리 불리는 ’비목‘입니다. 백암OP는 백암산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30여 분 능선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나오는 천혜의 방어진지입니다. 백암산 정상보다는 조금 낮은 해발고도 1158m의 고지로 과거에는 병력이 상주하던 GP였으나 지금은 감시장비로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백암OP에서는 맑은 날 비무장지대(DMZ) 일대와 함께 북한의 임남댐과 금강산 모습까지도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화천군이 DMZ 관광자원 활성화를 위해 2022년 10월 ’대한민국 최북단 케이블카‘인 백암산 케이블카를 개통해 10여 분이면 백암산 정상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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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강원 화천에서 국방일보 조용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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