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5일 오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장 지휘로 전날(24일) 진행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장면을 담은 사진 27장을 무더기로 공개했다.
북한 매체는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을 “초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이라며 “김 위원장의 친필지시(23일)에 따라 24일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3일 화성-17형 발사 준비 상황 보고서에 미사일을 쏘라는 지시를 남기고 있다. [뉴스1]
북한이 화성-17형 ICBM 발사 장면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지난 16일 발사에 실패한 것을 포함해 올해 들어 화성-17형 미사일을 네 차례 발사했다”며 “이전 발사 때는 정찰위성에 탑재할 장비를 시험하는 차원이라며 공중에서 지상을 촬영한 사진 1~2장을 공개했지만 발사 장면은 철저히 감췄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은 지난달 27일과 지난 5일 미사일을 쏜 다음날 각각 정찰위성의 촬영과 데이터 전송 등을 실험했다고 짧게 보도했을 뿐 발사 장면을 공개하지 않았다. 특히 발사에 실패한 16일 발사와 관련해선 침묵을 지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4일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 발사 현장을 찾았다. [뉴스1]
국제사회가 북한의 ‘넘지 말아야 할 선’, 레드라인을 김 위원장의 직접 지휘로 넘어선 사실을 공개한 건 신형 ICBM 발사 성공에 대한 자신감과 미국을 대놓고 위협하려는 차원이라는 지적이다. 북한 매체는 24일 발사한 화성-17형의 최고정점고도 6248.5㎞, 거리 1090㎞, 비행시간 4052초라고 밝혔다. 이는 2017년 11월 29일 발사한 화성-15형 ICBM의 최고고도 4475㎞와 거리 950㎞, 53분간 비행시간을 넘어서는 괴물급 ICBM이다.
북한이 2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장지도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북한은 이날 이동식 발사 차량(TEL)에서 미사일을 기립시켜 곧바로 발사해 발사 신을 단축했다. [뉴스1]
북한이 지난 2017년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를 발사하고 있다. 화성-15는 이동식 차량으로 미사일을 옮긴 뒤 판상형 발사대에 올려놓고 발사하는 방식이다.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2017년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를 발사하고 있다. 화성-15는 이동식 차량으로 미사일을 옮긴 뒤 판상형 발사대에 올려놓고 발사하는 방식이다. [연합뉴스]
무엇보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는 북한이 이동식발사대(TEL)에서 미사일을 기립시켜 곧바로 쏘는 장면이 눈길을 끈다. 트럭에 미사일을 싣고 이동한 뒤 발사 장소에 ‘판상형’ 발사대를 설치해 미사일을 거치하고 발사하는 화성-15형과 다른 모습이다. 화성-15형이 미사일 화염 등으로부터 TEL을 보호하기 위해 별도의 발사대를 이용하는 것과 달리 화성-17형은 트럭에서 곧바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발사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차원으로 볼 수 있다”며 “화성-17형은 이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비해 진화한 ICBM”이라고 말했다.
북한 ICBM의 마지막 과제였던 재진입(reentry)성공한 것 같다는 평가도 나온다. 화성-17형이 정점을 통과한 뒤 낙하하는 장면을 촬영한 일본 방위성이 공개한 동영상이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통해서다. 탄두가 대기권에 다시 진입하면서 섭씨 7000도 이상의 열이 발생하는데 탄두가 이를 견디는 기술을 확보했을 것이란 얘기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추정 물체가 연기를 내며 낙하하고 있다. 사진 일본 방위성 캡처
또 북한이 공개한 미사일 비행 정보는 한미 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것과 거의 일치한데, 이를 고려하면 평양에서 정상적으로 발사할 경우 미국의 최남단 플로리다(마이애미)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사일의 평속 속도를 음속의 10배(초속 3.31㎞)로 가정할 경우, 북한의 주장대로 4052초로 비행하면 1만3412㎞를 날아간다.
평양에서 미국 마이애미까지의 거리는 1만 2300㎞로, 미국 전역이 괴물미사일로 불리는 화성-17형의 사정권에 드는 셈이다. 일각에선 화성-17형은 미사일 앞부분에 작은 탄두 여러개를 싣고가 목표물 상공에서 분리해 공격하는 다탄두 미사일이라는 추정도 있다.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 레드라인을 넘은 사실을 ‘대놓고’ 공개하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미국이 추가 대북제재에 나서는 등 즉각 반발에 나선 이유다.
북한이 사정거리 1만 5000㎞의 정확도를 높이라는 김 위원장의 지난해 1월 지시를 이행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시도일 수 있다. 또 다음달 15일 김 위원장의 조부인 김일성 주석의 110회 생일을 기해 국방력 과시 차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 주석의 생일은 아직 시간차가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정권 교체기이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어수선한 국제 분위기를 이용해 북한이 기선제압 차원일 수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격랑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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