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한국 해군-영국 항모전단 연합해상훈련
한국 도입 예정인 F-35B 이함 훈련 모습 공개
엄청난 소음 동반, 이륙 위한 리프트팬 열린 뒤
거짓말처럼 공중으로 훌쩍 기체 떠올라
영국 해군의 F-35B가 항모 퀸 엘리자베스의 스키점프형 이륙대에서 이함하고 있다. 국방부 공동취재단
“환대해 주셔서 감사하다. 이번 방문은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
“퀸 엘리자베스 항모가 (부산) 항구에 들어왔으면 장병들도 좋은 경험이 됐을 텐데, 코로나19로 입항을 못 해서 아쉽다.” (부석종 해군참모총장)
지난달 31일 오후 2시40분, 한-영 연합 해상훈련이 진행된 동해 남부 해상. 국방부 공동취재진을 태운 한국 해군의 블랙 호크 헬기는 30여분을 비행해 영국 해군의 자존심인 항모 ‘퀸 엘리자베스’(배수량 6만5000t)의 갑판에 사뿐히 안착했다. 흐릿하게 구름이 내려앉은 동해 바다 위에서 두 개의 함교를 가진 특이한 항모의 모습이 한층 더 눈에 띄었다. 애초 퀸 엘리자베스는 지난달 말 부산항에 정박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갑작스레 확산된 탓에 입항 계획은 취소됐다. 그 때문에 양국 해군은 동해 해상에서 인도주의적 지원과 재난구호 위주 훈련 등 축소된 교류활동을 실시하는 걸로 대신했다.
한국과 영국 해군의 연합훈련이 실시된 지난달 31일 오후 동해 남부 해상을 항해 체류 중인 영국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에서
영국 전투기 F-35B가 이륙 시연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이번 한-영 연합훈련은 국내는 물론 주변국의 이목을 끌 만했다. 영국은 이번 훈련을 통해 미-중 간 전략 경쟁으로 인해 지정학적 중요성이 커진 인도·태평양 지역의 주요국인 한국과 연대를 과시할 수 있었고, 한국은 2033년까지 도입 예정인 3만t급 경항모와 관련해 영국의 항모 건조와 운용 경험을 배우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이를 보여주듯 스미스 대사는 이날 함상에서 진행된 환영 행사에서 “영국은 한국 해군과 정부에서 기획하고자 하는 경항모 사업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이번 방문과 행사 통해 많은 관계자에게 이와 관련된 정보 전해드리고, 여러 가지 교류를 통해 서로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자들에게 공개된 이번 훈련의 하이라이트는 한국 해군도 도입을 추진 중인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F-35B의 이착함 시연 장면이었다. F-35B 운용에 최적화된 퀸 엘리자베스엔 총 36기의 F-35B 탑재가 가능한데, 이날 갑판엔 10여대가 배치돼 있었다. 퀸 엘리자베스 호는 F-35 운영에 특화된 항모로 비행대대인 영국 공군 617비행대대를 거느리고 있다. 영국 해군은 “퀸 엘리자베스는 7~9개월이나 보조함을 포함한 호위 함정들과 함께 작전에 배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퀸 엘리자베스를 주축으로 하는 영국 항모전단의 모습. 오른쪽으로 제일 앞서 나가는 배가 영국의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다.
영국 해군 제공
이함 준비를 위해 노란 조끼를 입은 20여명의 영국 해군 승조원이 갑판에서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국 해군은 전투기의 이함 때 발생하는 엄청난 바람과 소음에 대비하라며 취재진에게도 헬멧과 고글을 지급했다. 한 영국 승조원은 특별히 “몸에 힘을 줘서 (강풍에) 버텨야 한다”고 주의를 줬다.
이날 이륙할 예정인 F-35B 2기가 활주로에 나란히 배치됐다. 이어 엄청난 소음과 함께 단거리 이착륙 과정에서 무거운 동체를 끌어올리기 위해 F-35B의 상부 리프트 팬이 열렸다. 기체 옆에 자리한 승조원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며 이함 신호를 줬다. 곧바로 F-35B는 퀸 엘리자베스의 스키점프대 쪽으로 짧게 활주한 뒤 거짓말처럼 공중으로 솟구쳤다. 활주를 시작해 스키점프대를 떠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5초 정도였다. 이어 뒤쪽에 대기하던 또 다른 기체가 같은 방식으로 추가로 날아올랐다.
한국도 이미 도입한 F-35는 세 가지 모델로 나뉜다. 공군이 지상 활주로에서 사용하는 통상 모델인 A형, 두 번째가 ‘단거리이륙·수직 착륙(STOVL.Short Take off & vertical Landing)이 가능한 B형이다. 마지막 C형은 사출기인 캐터펄트를 사용하는 미 항모용 모델이다. 한국 해군은 퀸 엘리자베스와 같이 20대 정도의 F-35B를 운용할 수 있는 경항모 건조를 ‘필생의 사업’으로 내걸고 추진 중이다.
제임스 블랙모어 항모 비행단장은 이날 국방부 공동취재단과 인터뷰에서 “항모의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동의 자유’이다. 항모의 예측 불가능함과 어느 곳으로 배치할지, F-35 운용을 어디서 할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유리한 조건이다. 이를 통해 잠재적 적들보다 한발 앞서 있을 수 있고 정부 또한 원하는 때에 세계적으로 군사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내년도 국방예산에 경항모 사업 착수금으로 70억원을 배정했다. 하지만, 한국이 ‘세계적으로 군사력을 보여주는’ 전략 자산인 항모 전력을 갖출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동해 남부 해상/국방부 공동취재단,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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