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지 못할 기억들 ♧
장포대 --- 해군장교가 장군을 포기하게되면 어떤심정일까?! 청운에 뜻을품고 사관생도로
갔을적엔 꿈도 야망도 머리속에 그리며 직업군인으로써 당찬포부도 많았을 군인의길 2개월간 수통에서 무슨 생각들을 하였을까? 엘리트 해군생도출신인 중대장 작업중 오른손을 다쳐을때 나는 그의 오른손을 치켜들고 부상병을 부축하듯이 그를 부축하였는데, 그는 오히려 내가 웃었다고 말하면서 작업중인 대원들 아무도 그를 챙기지
않았섰는데, 왜일까 ?!
장포대라는 말은 전역후 한참후에야 대대 작전병으로부터 그런 사연이 장군을 달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허리가 요통이 시작될 때면 문뜩 그가 떠오른다
오랜 트라우마 탓일까 ? 의무복무를 하는 해병이 도대체 무엇을 잘못 했기에 그는 왜서 머나먼 곳 백령도 까지 갈중사를 찿아갔을까 ?!
내가 어떻게 여기 까지 왔는데, 그에 입에서 나온 말이다 . 장포대 된후 나랏돈으로 공부만 한 모양이다
작전장교가 2013년 산학협력으로 만들고 보좌관을 연임한 인연으로 가엾비 여겨 그를 주요자리에 앉혀놓고 지금까지 왔을까 ?!
해병대 순검을 없앤 작전장교 여러 선후배 해병들에겐
비호감 31대 사령관으로 낙인찍힌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중앙회 총재시절 나를 "자유로운 영혼" 이라 말했다고 누군가 전하여 온다 .
나라 지키다가 미치고 허리 찢밟히고 영혼과육체는
서서히 퇴행으로 치닫을며 요통이 찿아온다 나는 그를 용서해야 할까 ?!
30개월 기나긴 의무복무를 해병대에서 보낸 나로써는
그가 한말이 지금도 귓전에 쩌렁 쩌렁 울려 퍼진다.
그렇게 죽고 싶어 그럼 죽엇 ×세끼야 그의 커다란 워카발이 내 허리를 찢이겨 버리고 두눈은 이성을 상실한 악마에 모습으로 가끔씩 식은땀을 흘리면서
악몽을 꾼다.
30년이 훌쩍 넘어가는 시간이 지났지만
만약에 내인생 필름이라면 그부분만 살짝 잘라내고
해병대 보병 만기전역자로써 자부심과 긍지만을 간직한채로 살아갈수는 없는 것일까 ?!
나는 망각에 늪에 빠진 것일까 ?! 그가 용서가 되질 않는 다 대대 해병일수를 영창에 보낸 선임하사 관은
수십년 지나서 통화를 하니 마음이 한결 좋았섰다.
당시는 서운 했었다고 당신께서도 녹녹지 않은 군생활을 하였다며 성토를 하는것을 보니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품이 포용하고 끌어앉는 인성이 아닌지라 하지만 젊은시절 웃음으로 넘기며 통화는 그런대로 유쾌했다.
어쩌면 그통화가 아니었던들 하후 98기 라는 숫자는 아마도 지금도 나의 뇌리에 온갖번뇌 와 삿된 마음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툴 툴 털어 버리니 그날에 통화는 잘했다고 판단 되었다.
좀 처럼 가시지 않는 해사 40기 와의 악연은 나를 망각에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트라우마에 잔상일까
해사 36기 그분에 인성을 그가 닮았더라면 하는 아쉬운 생각도 떨칠수 없는 번뇌일까? 망상일까?
이병시절 전방 보병중대 막내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분에 털털한 형님같은 인성 제주에 마눌이와 찿아갔을때 보여준 훌륭한 인품 과 인성 그는 제주 ROTC 학교장을 끝으로 대령 예편 했다고 페북에서 누군가 알려 주었는데, 아마도 같이 복무한 예비역 장교가 아니었나 생각 된다 .
비오는 수요일 그렁 그렁 수놓은 저 하늘 먹구름도
세차게 내리꽃던 비줄기도 잠시 소강상태 옛일이 자꾸 생각나서 굳은비 내려는 광명역에서 잠시 생각에 젖는다 . 내가 그를 용서할수 있는 날이 오기를 ...
2022. 03. 30 15:47 ㅡ DJ 윤 ㅡ
출처 페이스북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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