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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에서 발견된 북의 남침용 땅굴 재조명 미 국방부 홈페이지

by master posted Jul 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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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산업전략포럼] 장상호기자 = 미 국방부 홈페이지에 북이 DMZ에 몰래 파내려언 남침용 땅굴을 발견한 과거 사건을 재조명하는 기사가 15일 게재됐다.

 

북한은 1971년 9월 25일 김일성의 명령에 따라 땅굴작전을 개시했다. ‘9·25교시’라 알려진 이 명령에서 북한 괴로도당의 1대 돼지 김일성이 “남조선을 해방하기 위한 속전속결 전법을 도입하여 기습전을 감행할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북괴는 각 군단별로 땅굴작전을 수행하여 대략 20여 개의 땅굴을 남쪽으로 파내려 온것으로 추정된다.

 

북괴의 땅굴은 1974년 11월 15일 고랑포에서 처음으로 제 1 땅굴이 발견된 후 1975년 3월 19일 철원 제 2 땅굴, 1978년 10월 17일 판문점부근에서 제 3 땅굴이 발견됐다. 이로인해 북괴의 땅굴은 서부와 중서부전선에 집중된 것으로 보였지만 1990년 3월 3일 강원도 양구 북방에서 4번째 땅굴이 발견됨에 따라 DMZ 전반에 땅굴이 존재한다는 것이 확인됐다.

 

 

1975년 3월 19일 촬영된 제 2 땅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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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미군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북한은 지하에서 남한을 기습 공격하기위해 비무장지대(DMZ) 지하에 터널을 팠으며 한 미 양국의 긴밀한 협조로 추가 땅굴을 발견했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 터널은 1974년 지상에서 증기가 올라오는 것을 목격하고 지하 폭발 소리를 들은 한국 육군 순찰대에 의해 발견됐다. 정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군은 DMZ 중앙 부근 철원 주변 지역에서 더 많은 의심 터널을 수색하고 한국 광산 회사를 고용하여 시추 작업을 수행했다. 그러나 69개의 시추공을 뚫었지만 추가 터널을 발견하지 못했다.

(註 제 1 땅굴 1974년 11월 5일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에서 발견됐다. 너비 90cm, 높이 1.2m, 지하 2.5~4.5m, 길이 3.5km에 달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이 땅굴은 서울에서 65km에 위치해 1시간에 1개 연대 이상의 무장병령과 중화기, 포신이 통과할 수 있는 땅굴이다.)

 

1975년 3월 20일 The Korea Herald가 1면에 북괴의 땅굴 발견을 보도한 영자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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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말, 한국은 미 육군 공병대(USACE) 극동지구(Far East District’s (FED)가 고정밀 우물 (water wells)시추에 대한 전문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확인하여 FED에 공식 지원을 요청했다. 이미 1965년부터 FED는 한국 전역의 미군 시설에 우물을 위한 드릴링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운용중이었다.

 

지원 요청에 따라 1975년 3월까지 FED는 정밀 시추공 시추 장치를 설립하고 DMZ에 시추 대원을 파견했다. 팀은 3교대로 하루 8시간씩 24시간 주야로 계속 시추작업을 수행했다. 12일 간의 집중적인 시추 작업 후, 지하 155피트에서 드릴 중 하나가 터널 공간을 찾으면서 제 2 땅굴을 발견했다. 이 굴은 높이 4피트, 폭 3피트로 시간당 최대 30,000명의 병력을 수용할 수 있었다.

(註 제 2 땅굴 1975년 3월 강원도 철원군 근동면에서 발견되었다. 북한에서 군사분계선까지 2400m, 군사분계선에서 우리쪽까지 1100m이고 너비와 높이 2m, 길이 3.5km, 지하 50~160m이다)

 

1984년 DMZ에서 땅굴 시추 작전중인 미 FED T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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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땅굴이 발견된 후 미8군은 FED가 기술 및 물류 지원을 통해 지원한 터널 중화팀(Tunnel Neutralization Team (TNT)을 설립했다. FED의 선임 지질학자로 DMZ 터널중화팀(TNT) 시추에 참여한 김세곤 씨는 “FED 시추팀이 DMZ 전체를 따라 추가 터널을 찾기 위해 작업했다”고 말했다.

 

1974년 9월 5일 북한에서 귀순한 김부성이 비무장지대(DMZ)에 터널이 있으며 판문점 부근에서 굴착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를 토대로 시추 작업이 시작됐지만 “북쪽에서 바라보는 지점과 남쪽에서 바라보는 지점이 달라 정확한 지점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우연히 1978년 6월 10일에 오래된 버려진 시추공에서 폭발이 감지되었고 곧바로 FED 시추팀이 주변 지역에서 역터널 굴착 작업을 진행하여 10월 17일 팀이 작업하던 터널 끝단 15m 전방에서 제 3 땅굴이 발견됐다.

 

터널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군사정전위원회를 지원하던 유엔군 전진기지에서 2㎞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게다가 북한이 뚫은 땅굴중 서울과 가장 가까운 터널이었다. 이 사실은 발견 당시 상당한 충격과 소란을 불러 일으켰다.

(註 : 제 3 땅굴 너비와 높이 2m, 길이 1.635km, 깊이 73m이며 1시간에 3만여명의 무장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다. 또한 서울에서 44km 지점에서 발견된, 가장 가까운 땅굴이다.)

 

1978년 10월 17일 찰영된 제 3 땅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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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에서 보아도 한미간의 기념비적인 공동 작업이었던 DMZ 근처의 땅굴 탐지는 FED와 해당 인력의 전문성과 숙달된 능력이 반영된 가장 두드러진 성과 중 하나로 남아 있다.

(註 제 4 땅굴 1990년 3월 3일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에 위치. 폭 2m, 지하 145m, 전체길이 2052m이고 군사분계선 남쪽 1502m에서 발견)

 

1985년 강원도 양구에서 땅굴 조사중인 FED를 지원하는 미 육군 CH-47 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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