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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해체의 교훈" / 해간 3기 이근식

by master posted Mar 3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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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간 3기 이근식,  "해병대 해체의 교훈" 

 

칼럼 출처 : 해병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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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미 오래 전의 지난 일이고 또 우리가 잊어버릴 수 있는 내용이지만 다시는 이와같은 허망하고 불행한 국가시책으로 인하여 "해병대의 해체"나 또는 감축이라는 국가의 안보를 정권의 어떤 이해관계에 이용되는 사례가 재발되는 일이 없도록 우리 스스로 반성하여 사전에 이를 예방하며 또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해병가족 모두가 숙지하고 있어야 할 내용을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음. - oldmarine -

 

          ■이근식 예)대령   해간 3기■

1973년 7월초 해병대 사령부에서 "지휘관 회의"가 있었다. "1973년도 전반기 부대업무 실적 보고 회의"이다. 이때 나는 해병 도서경비부대장으로서 이 "지휘관 회의"에 참석했다. 이 "지휘관 회의"는 이병문 사령관의 임기가 6월 말로 끝나게 돼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중임이 된 후의 첫 "지휘관 회의"이다. 이때의 부사령관은 초대 청룡부대장인 이봉출 중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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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령관의 언질

 

나는 "지휘관회의"가 끝나고 사령부 현관을 나오는데 부사령관을 우연히 현관에서 만났다. "이 대령 어디 가서 저녁이나 먹지" 하면서 부사령관은 자기 승용차를 타라고 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시내의 작은 일식집에서 간단히 식사겸 반주를 하고 있었는데 부사령관이 나에게 "이 대령 인제 옷 벗을 생각하고 좋은 직장을 알아보는 게 어떤가?" 라고 청천벽력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나의 귀를 의심했다. 무슨 소리인지, 또 무슨 뜻인지도 알 수 없어서 멍 하여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앞으로 4, 5년은 해병대 생활을 더 할 것을 계획하고 있는 나에게는 그 말은 얼토당토한 소리로 들렸다. 그런 나에게 부사령관은 계속 무슨 말을 할 듯 하면서 끝내 그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그 이상 더 묻지 않았다. 단지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구나 하고 추측만 했을 뿐이다. 이때 그가 나에게 말할 듯 하면서 말 안한 내용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것은 해병대의 해체였다.

 

그날 밤 숙소에서 자고있는 나에게 야밤에 사령부에서 전화가 왔다. "부대에서 무슨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아침 6시에 인천항에서 해군 함정이 대기하고 있으니 그걸 타고 부대로 즉시 복귀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부대에서 무슨 큰 사고라도 난즐로 생각되어 뜬 눈으로 밤을 지냈다.

 

다음 날 새벽 나는 조바심하는 마음으로 해군의 구축함으로 일반 선편이면 10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3시간 만에 '백령도'에 도착했다. 부두에 장교들이 마중나와 도열해 있었다. "뭐 있어?"하고 우선 나는 그들에게 급히 물었다. "이상 없습니다"하는 그들의 대답이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면 무슨 일일까? 틀림 없이 무슨 일이 있다했는데? 궁금 속에 아무에게도 내색을 할 수 없는 하루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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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의 특별담화

 

다음날 아침 일찍 사령부에서 전문이 왔다. 아침 10시에 사령관의 특별 담화문 발표가 있으니 전장교는 경청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부대의 전 장교들을 오전 10시 10분 전까지 장교식당에 집합시켰다. 10시 정각 사령관의 담화문 내용이 긴급전문으로 왔다. 나는 통신장교에게 그 긴급전문을 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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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0월 10일을 기해 해병대 사령부와 직할부대를 해체한다"는 엄청난, 우리가 전혀 예상도 못했던 폭탄선언 같은 그런 내용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무슨 법 개정도 없이, 국군조직법의 개정도 없이, 또 예고도 없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마음대로 국군조직법에 의해 편성된 역전의 해병대, 상승의 해병대를 해체한다면 이건 완전히 독재가 아닌가? 나는 분통부터 터졌다. 무슨 놈의 나라가 이런가?

 

우리는 전부 어안이 벙벙해서 마치 시간이 일시에 정지한 것 같은 느낌 속에 있었다. 무슨 날벼락인가? 해서 이다. 나는 장교들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대부분의 장교들은 묵묵히 앉아 있었고 그들 중의 몇몇 장교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왜 눈물을 흘렸을까? 슬퍼서 였을까? 원통해서 였을까? 또는 앞으로의 삶이 염려가 돼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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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 해병대는 5.16 군사혁명 당시 주력 역활(김포 주둔 해병대의 오정근 중령이 지휘하는 해병 대대의 서울 선두 진입)로 이룩한 박정희 정부에 의해 뒤통수를 얻어 맞고 어이 없게도 아뭇 소리도 못하고 맥없이 해체되었다. 그것도 3개 월만에! 우리가 어떻게 이룩한 해병대인데! 그리고 우리의 선배, 해병대의 수뇌부에서는 아뭇 소리도 못했다. 그들은 이에 대한 아무러한 해명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한 것이었다.

 

참새도 죽을 때는 "꽥" 한다는데 우리는 전부 입 가진 벙어리가 되었다. 그 동안 "귀신 잡는 해병대"라고 불리웠던 해병대가 입으로만 귀신을 잡고 있었단 말인가? 그랬다면 그 동안 흔히 듣던 개병대라는 Nickname은 허울이었단 말인가? 주인에게 용도폐지되어 도살당하는 똥개? 그렇지 않으면 허풍대가 아니었던가?

 

사실 이런 사태는, 해병대 사령관이 뚜렷한 사유도 없이 중임되었을 때부터 우리는, 특히 해병대 수뇌부에서는 무슨 예기치 않은 변동이 있을 것을 예측했어야 했으나, 그것은 부사령관(이봉출 장군)이 사령관으로 당연히 보임되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게 됀데에 대한 어떤 의구심을 가젔어야 했으나, 당시의 해병대의 졸장부들은 너무 근시안적이었고 또한 우물 속의 개구리같았기 때문에 사령관의 중임을 아무 의구심도 없이 얼떨결에 받아드렸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실 그 동안의 해병대의 내부적인 여러가지 동향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해병대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데에서 엿볼 수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의 대대작전장교가 해병대 사령관이 되고 그 당시의 대대장이 부사령관이 되었으니, 이것이 거꾸로 된 것이 아닌가? 해병대의 선후배가 顚倒되었으니, 사실 이때 해병대는 여러 분야에서 이미 거꾸로 운영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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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의 해체"에 대하여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 이유가 나변에 있던지 간에 국가시책에 의해서 해병대가 해체되었으니 그 해체에 대하여 아무도 책임질 당사자는 없을 지 알 수 없으나 당시의 해병대 수뇌부는 스스로 자기들, 수뇌부로서의 해병대의 운영, 관리, 및 유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었으니 해병대 사령부와 그 직활부대가 해체되는 데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감을 느껴야 했다. 

 

그러면 과연 그들이 참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 지 나는, 아니 우리는 그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말 그들은 그렇게 도의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설마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아니겠지?

 

우리가 여기서 "누군가 책임을 지라"는 것은 해병대의 해체에 대해서 누군가 책임을 지고 활복자살이라도 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해병대의 해체의 원인과 앞으로의 예상되는 상황 전개, 그리고 예상되는 그 귀결에 대해서 속시원하게 책임지고 누군가 설명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을 무슨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못하고 있었단 말인가? 이런 내용은 당시의 해병대 수뇌부의 할 일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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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때부터 오랜 후일(2006년)에 당시의 직전 사령관의 측근(박00 해간 42기 해외 거주)으로부터 그 이전에 해병대 해체의 시기는 알 수 없었지만 해병대 해체가 이미 결정된 사실은 알고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그가 오래 전(70년대)에 이민 간 국가(Canada)로부터 Internet를 통해서 내가 일부만 듣고 알고 있어서 가장 구금하게 생각하고 있던 그 내용의 일부를 나에게 알려 와서 나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볼 때 그 당시 해병대 사령부 수뇌부의 몇몇 장군은 해병대 해체에 대한 내용을 이미 1970년도에 알고 있었으나 쉬쉬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생각할 수록 기막힌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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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사령부와 그 직할부대가 해체됨에 따라 우선 수 많은 고급장교들이 전역하게 되었다. 전역대상은 대부분 한국전쟁 참전 장교들이다. 특히 해간 3기생과 7기생 그리고 9기생들이 대상인 것 같았다.

 

해간 3기생 중 장군은 8명인데 그들 중에는 존경스러운 하늘의 별도 있지만 편가르기에 편승해서 별을 단 똥별도 있고 개인의 심복이 되어 치사하게 해병대 근무를 하다, 치사하게 별을 단 더러운 별도 있다. 이런 별들에게는 해병대의 해체라는 극비의 중대사를 해병대 사령관은 미리 알려서 대책을 강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을 믿을 수 없어서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망군적 풍조는 해병대를 위해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더러운 정치인도 일익을 담당하여 해병대를 오염시키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그들 자신만 있었고 해병대는 그들의 정치 생명을 유지하며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한낮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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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치사하고 더러운 별들은 자기들이 똑똑해서, 해병대에 공헌을 많이 해서 별을 달았지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들 나는 그런 별들을 똥통 속으로 처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금도 때때로 모임에서 그런 그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의 으쓱대는 꼴이란, 아직도 정말 꼴불견이다.

 

그 외는 전부 고참 대령들이다. 최소한 해간 3기생은 20여 명은 족히 될 것이고 해간 7기생과 9기생까지 포함하면 대략 50-60명의 대령급 장교들이 전역될 듯 했다. 우리는 복받처 오르는 분노를 눈물로 삼키면서 내쫓기는 식객같이 주섬주섬 전역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해병대의 이런 갑작스러운 해체로 인하여 큰 슬픔에 잠겨있는 예하부대에 사령부(인사참모부)로부터 전역원서를 언제까지 제출하라는 공문이 왔다. 물론 당연한 행정절차이겠지만 기가 막히는 것은 만일 기일내에 제출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전역발령을 내갰다는 협박장 같은 내용의 단서가 붙어 있었다. 우리는 이 문서를 보고 모군으로부터 배신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당시의 해병대의 실체였다. 우리는 그런 해병대의 현실을 피눈물을 흘리면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누가 이런 우리의 심정을 이해나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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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공문은 너무나 경솔하게 분별없이 작성된 내용이어서 그 내용을 알게 된 장교들은 한결같이 분노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심중치 못한 인사참모부의 경솔한 처사인가? 그렇다면 전역원서를 받는 절차를 생략하고 막바로 전역발령을 내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갑작스러운 해병대 해체 소식에 말 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있는 우리를 이 공문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정말 소갈머리가 없는 사령부의 인사처리 방법이었다. 이것이 당시의 해병대의 일면을 보여주는 현주소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공문서를 보고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애군정신이 아니라 오히려 정나미가 떨어졌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날까지 목숨을 걸다 싶이 하여 최선을 다해서 근무하던 모군, 해병대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똥별들에게는 자기들만 있었고 해병대는 없었던 게 어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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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뿐만 아니다. 후일에 알게 된 기막힌 사실은, 비록 개인에 극한된 문제이지만, 이들은 미 육군대학(U.S.A. Command & General Staff College)에서 1년 간의 군사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유능한 장교를 목포막사로 보직발령을 냈었다. 이런 처사는 그대로 있겠으면 있고 싫으면 옷벗고 나가라는 소리가 아닌가?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인가? 아무리 도미유학장교에 대한 질시의 골이 깊었기로소니 이건 너무한, 상식에서 벗어난 처사가 아닌가? 그러니 그들에게는 그들 자신만 있었고 해병대는 없었다는 소리를 들어도 당연하지 않은가?

 

이에 반하여 육군은 어떠하였는가? 대육군의 수많은 응시자 중에서 미 육군대학 유학장교를 엄정히 선발하여 유학 보냈고 귀국 후의 그들은 일정 기간 육군대학에서 교수 근무를 마치고 군의 요직에 등용되어 대부분이 장군 진급을 하였다.

 

육군 총장도 미 육군대학출신이 많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기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의 모군 해병대에서는 유배나 다름 없는 한직으로, 목포막사로 쫓아? 보내고 있으니 이들이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그런 인사처리를 했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비싼 비용을 드려 미국 유학을 보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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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무지하고 무책임한 참모가 과연 무엇을, 어떻게 올바르게 해병대의 발전을 위해 평소에 무엇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러니 해병대가 그 꼴이 된 거 아닌가? 그 장교는 모군으로부터 버림 받은 듯한 충격으로 그만 한국땅을 떠나서 이민을 가고 말았다. 이 얼마나 그 개인을 위해서나 또 해병대를 위해서 서글프고 또 허망한 일인가? 

 

이런 것들이 별을 달고 있었다니 과연 누구한테 무엇을, 어떻게 하소연할 수 있었을까? 이것이 당시의 해병대의 현실이었다. 이런 자들이 해병대의 정책 입안자고 또 시행자였으니 해병대의 꼴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는가? 하는 자소하는 생각마저 나는 들었다.

 

이런 갑작스러운 해병대 해체는 국가적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이득을 얻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처사는 상식으로도 이해가 안갈 뿐만 아니라 그것도 얼마 되지 않는 예산절감을 위해서라니, 이건 너무나 근시안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고 또한 그로 인한 막대한 손실은 국가적으로, 그리고 해병대의 입장에서도 어떠한 액수로도 그 손실은 비교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무엇으로도 보상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해간 7기생들은 그 수가 해간 3기생의 수와 같이 많을 뿐더러 한국전쟁에 참전한 우수한 장교들이 많았다. 한국 전쟁 중 서부전선에서 우리(해간 3기생)가 중대장을 할 때 그들은 소대장으로서 적과 직접 전투하면서 해병대의 정신을 배웠고 또한 해병대의 전통이 무엇이라는 것을 직접 보고, 듣고, 그리고 체험하며 터득했던 것이다.

 

그들 속에서 해병대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우수한 인재들, 해병대 사령관 뿐만 아니라 더 큰 일도 할 수 있는 인재들이 많이 배출될 것으로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중도에서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지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까웠다. 이로 인하여 해간 7기생 중 장군은 2명만 배출되었을 뿐이다.

 

이때 어떻게 해병대가 이렇게 갑자기 허망하게 해체되게 되었는지 누군가 우리에게 설명헸어야 했다. 그리고 "누군가 이에 대해 책임을 졌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우리는 우리의 분노를 우리의 선배들, 특히 해병대 사령관출신들에게 터뜨렸다. 이미 위에서 언급했지만 그때의 우리에게는 여기에 대한 해답이 무엇 보다 아쉬웠다. 나에게는 그때의 그 아쉬움이 아직껏 망령처럼 남아있다.

 

우리의 정든 해병대 군복을 벗드라도 그 이유나 알고 벗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 그때의 우리들의 무엇보다 간절한 소원이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의 분노가 다시 가슴 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음을 느낀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는데 그때는 어떠 하였는지 표현할 수도 없다.

 

미국 해병대가 그 긴 200여 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외적과 싸운 것 보다 군 내부의 적과 더 많이 싸웠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그들로부터 들었을 때 우리에게는 그것이 남의 일로, 우리와는 관계없는 먼 이웃 나라의 일로만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현실로 우리에게 갑자기 다가와서 우리를 해체라는 절망 속으로 빠지게 만들었으니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때처럼 우리에게 "유비무환"이라는 선인의 말이 그렇게 절실하게 느껴진 적이 아직까지 없었다. 아니 우리 모두에게 없었을 것이다.

"유비무환"은 어떤 구호에 끝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행동이며 또한 실천이다. 그러면 해병대 수뇌부는 평소에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또 사령관출신들은? 전관예우라는 울타리 속에 안주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지 않았으면 유비무환 못해서 유구무언인가? 그렇지 않으면 정중동하고 있었단 말인가? 누군가 이에 대하여 대답을 우리에게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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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병대 해체"의 遠因

 

해병대는 특히 육군과는 과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그것은 본의아니게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공연한 허세를 그들에게 부린 일도 있었다. 물론 그 당시는 "우리는 해병이다"라는 큰 자부심으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실은 이것은 약자의 변명이고 또한 소수집단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였겠지만 그런 우리의 심중치 못한 언행이 결과적으로 해병대호라는 배를 침몰시키는 먼 원인 중의 하나로도 생각할 수 있다.

 

(1) 육군에 대한 혐오감

우리가, 해병들이 육군을 싫어하게 된, 무엇 보다 큰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한국전쟁 중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국 육군 제6사단의 후퇴

1951년 4월 해병 제1연대가 중동부전선에서 미 해병 제1사단의 작전통제하에 미 해병 제1사단의 좌일선연대로 38도선 이북으로 북진 중에 있을 때 한국 해병 제1연대의 좌일선에 있던 한국 육군 제6사단이 중공군에게 돌파당하여 급히 후퇴하는 바람에 해병 제1연대도 미 해병 제1사단의 명령으로 2박2일 간 38도선 이북으로부터 38도선 이남으로 힘들고 어려운, 우리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후퇴이동을 했었다. 그때의 해병들의 가슴 속에 사무쳤던 육군에 대한 원한같은 것으로 인하여 육군을 싫어하게 되었으며, 그때 우리는 육군은 장교이건 사병이건 모조리 포로로 취급했었다.

 

그때의 그 감정이 당시의 그 작전에 참전했던 해병들에 의해서 구전되면서 더욱 과장되거나 심화되어 육군에 대한 감정이 세월따라 더욱 악화된 것으로 나는 믿고 있다. 나는 그때 해병 제1연대 제1대대 제2중대 3소대장이었으며 후퇴이동 중은 대대 첨병소대장이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해병대 전투(3)에서 설명한 바 있다.

 

그렇다하여 우리가 그들보다 월등하게 강하고 또한 우수하다고만 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육군은 어디까지나 대육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도 모르고 무턱대고 육군을 깔보거나 싫어하는 해병들을 우리는 자주 주변에서 보게 되거나 그런 소리를 듣게 되는데 이래서는 안된다. 그럴려면 거기에 합당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 이유도 모르고 육군을 무조건 싫어한다는 것은 옳치 않다. 때문에 우리는 그 이유를 사실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오래 전의 부득기한 한국전쟁 중의 사실로 받아드리고 이제는 그들과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

 

"해병 정신"

 

그러나 우리는, 해병들은 그 어려움 속에서 해병정신이 무엇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하여 알게 되었고 또한 그 속에서, 어려움과 역경 속애서 우리는 하나가 되어 전우애(상경하애의 희생의 정신)를 깨닫고 또한 어려움에 처했을 때의 상황처리 방법과 능력을 습득하였던 것이다. 특히 자신에 대하여 알게 되어 "상승해병", "무적해병",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해병정신의 기본기틀을, 정신적, 체력적으로 마련하게 된 것으로 나는 믿고 있다.

 

그러니 해병정신은 결코 어떤 이론, 우리의 머리 속으로부터 만들어져 나오는 그런 이론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런 것은 모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방 속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에 쉽게 망가지게 된다.

 

"해병 정신"은 시련이나 역경을 통한 단련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지 말이나 무슨 문서로도 얻어질 수 있는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는 자가 있으면 그런자는 천하의 거짓말쟁이거나 혹은 위선자이거나 또는 모방자일 것이다.

 

해병대 독립을 위해 앞장서신 선후배님들이야 말로

선구자 임니다.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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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병대 해체의 교훈  

#해간 3기 이근식 대선배님의 말씀

#  해병학교  교장역임 

# 미국 은성무공훈장  수여자 

#도솔산  돌격  소총소대장 

#특수 교육대  대장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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