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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남한에 배치했던 핵무기는 총 8종류" [노컷뉴스]

by master posted Oct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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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학자연맹 한스 크리스텐슨 국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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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학자연맹(FAS) 한스 크리스텐슨 국장. 권민철 기자

 

 

미국 워싱턴DC에는 미국과학자연맹(FAS)이라는 초당적인 연구단체가 있다.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진 직후 과학으로 인한 인류 절멸의 가능성을 엿본 미국의 과학자들이 인류 평화를 위해 과학 기술이 사용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 만든 기관이다.

 

지난 71년간 이 단체는 핵무기, 생화학 무기의 심각한 위협을 최소화하고 과학 기술로 인한 재앙적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왔다.

 

초기에는 핵전쟁의 실존적 위협 제거에 역량을 집중해왔지만 이후로는 군사 기술 전반에 대한 감시, 과학 기술 이슈에 대한 증거 중심의 분석, 정보공개를 통한 정부의 투명성 제고, 국가 안보와 국익을 위한 정책 제언 등의 활동도 병행해오고 있다.

 

이 단체에서 핵 정보 관련 분야를 총괄하고 있는 인물이 한스 크리스텐슨 국장이다. 미국 핵 무력의 실상과 핵무기의 역할과 관련한 정보의 획득과 분석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23일(현지시간) CBS노컷뉴스와 만나 그가 수행 해온 연구 가운데 미군이 남한에 배치했던 핵무기에 전반에 대해 소상히 설명했다.

 

▷남한에 한때 950개의 핵무기가 배치돼 있었다고 추산했는데, 어떤 근거에서인가?

 

▶미국 핵무기의 (해외)배치와 관련된 역사는 기밀이 해제되어도 구체적인 숫자 등 데이터는 삭제된 채 공개된다. 그러나 그래프 등은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 주변 데이터를 모두 긁어모아서 합하고 비교해서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었다.

 

크리스텐슨 국장은 이런 방식으로 정보들을 모아 2010년 미국 핵무기 비축량을 추산해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 폭로한 비축량은 추후 미국 정부가 비밀해제해 발표한 숫자와 13개정도 밖에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1천개에 이르는 핵무기의 종류는 어땠나?

 

▶마 핵무기 전시장과도 같았다. 가장 많았을 때는 8종류의 핵무기가 배치됐다. △어니스트 존 지대지 핵미사일, △마타도르 핵순항미사일, △ADM핵지뢰, △280mm 핵직사포, △203mm(8인치) 핵곡사포, △핵전투기 투하용 핵폭탄, △나이키 헤르클레스 대공 및 지대지 핵미사일, △155mm 핵곡사포가 차례로 배치됐다.

 

그는 남한에 배치된 8종류의 핵무기를 자료를 보지 않고 술술 읊었다. 이들 핵무기들은 순차적으로 미국 본토로 회수돼 1991년 말 회수가 완료됐다고 한다. 완료직전까지 남은 마지막 핵무기가 B61 핵폭격기용 핵폭탄과 155mm 핵곡사포였다고 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핵무기 배치량은 어땠나?

 

▶소련과 핵경쟁을 하던 때라 소련과 인접한 유럽에 가장 많은 핵무기를 배치했다. 유럽에 핵무기를 처음 배치한 것도 한국에 핵무기를 배치한 때 보다 4년 앞섰다. 60년대 미국은 3만개가 넘는 핵무기를 비축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7300개 정도가 유럽 전역에 배치됐다. 그렇다고 남한에 배치된 핵무기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당시 중국이 보유중이던 핵무기 전체량보다도 5배가 많은 숫자였다.

 

▷한국에 그렇게 많은 핵무기를 배치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그 때는 미군이 핵무기에 빠져(hooked) 있었다. 전략적 목적에서, 군사적 목적에서 핵무기를 강조했다. 핵무기가 공군이나 해군 같은 지위를 주기도 했다. 그래서 과잉 배치했다. 어떤 때는 지프차 뒤에 핵 바주카(bazooka)포를 달고 다니기도 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다. 심지어 핵무기를 언덕에서 전투를 벌일 때 사용할 수 있는 무기로도 생각했다. 그러다 1970년대 미국 의회에서 미군의 해외 핵배치에 대한 조사를 하게 됐다. 조사 결과 핵이 배치된 국가에서도 핵무기가 얼마나 배치됐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사실, 핵무기 저장 시설에 안전문제가 있다는 점, 핵이 너무 많이 배치됐다는 사실 등이 드러났다. 해외 배치 핵무기가 차츰 줄어든 것이 그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정부가 한국정부에도 핵배치 사실을 알려줬나?

 

▶핵배치 국가에는 당연히 배치 정보를 제공했다. 그러나 배치 숫자 등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유럽에서는 나중에야 핵무기 배치 숫자, 기간 등을 알게 된 국가들이 놀라움을 표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미 양국 정부는 남한 핵배치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않는 'NCND' 정책을 유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맞다. 냉전 기간 동안 매우 중요한 정책은 NCND정책이었다. 그 것은 핵무기의 존재에 대해 대중을 무지(ignorant)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으며, 핵배치 국가에게도 그것을 모른 척 연기(play)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효과적인 외교 수단이었다. 그러나 한국군은 한미연합작전 체계였기 때문에 핵무기 관련 작전에 관여돼 있었다. 따라서 핵무기는 한미 양국을 핵무기 차원의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냈다.

 

▷핵무기가 남한에 배치된 사실을 북한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남한 핵무기는 비밀은 아니었다. 핵무기 숫자나 유형 등 구체적인 정보는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등이 배치 문건을 폭로하거나, 아니면 미군 당국에서도 배치 계획 등을 간간이 발설하기도 했다.

 

▷미군 발설은 북한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겠지?

 

▶그렇다. 당시 핵무기는 북한의 침략, 북한이 보유중인 엄청난 재래식 무기 사용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상대방이 내가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비로소 핵무기의 억제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에게 나의 핵무기 이야기를 어떻게든 해야 한다. 물론 구체적인 것은 발설하지 않는다. 미군 내에서 가끔 핵무기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런 명백한 목적 때문이다.

 

▷남한 핵무기가 북한 핵개발의 원인이 됐다고 보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찾기는 어렵다. 북한이 핵 '무기'까지로 개발단계를 발전시킨 것도 미군이 남한에서 핵무기를 철수한 이후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도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는 이유에 대해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자위(self defense)를 위해 자신만의 핵무기를 개발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 논리는 미국이나 다른 핵보유 국가들이 핵을 개발하면서 내세웠던 논리와 똑 같다.

 

워싱턴=CBS노컷뉴스 권민철 특파원 twinpin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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